의식혁명-데이비드 호킨스
' 신성이나 불성이 인간에게 이미 깃들여 있다'는 색다른 명제에서 시작하는 책.
저자는 근육 반응 시험을 통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얼마든지 표면화시켜 사용할 수 있다.
표면의식에서는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도 인간의 깊은 잠재의식에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그는 결국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이 시험을 활용해 줄 것을 제안한다.
일반 통계적으로 78%의 사람들은 인류의 평균 의식수준 200을 밑돈다.
한 개개인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 승수효과를 발휘하면서 그 개인이 속한 지역, 국가, 인류의 의식수준이 높아진다.
' 의식수준 17단계
에너지 수준 200 : 용기
200의 수준에서는 내면의 참된 잠재력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에너지 수준 200 이하인 피험자들 모두가 약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기술한 바 있다. 생명력을 증진시키는 200 이상의 수준에서는 모두가 강한 반응을 보여준다. 200 이야말로 인생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구분하여 주는 분기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풀이한다.
우리는 이 수준에서 비로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갖기 시작하며, 이 단계야말로 탐구, 성취, 인내, 결단의 영역이다. 이보다 낮은 수준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희망이 없고, 슬프고 무섭고,좌절감으로 가득 차 보인다. 하지만 '용기'의 수준에 이르면 인생이 흥미롭고, 도전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된다. '용기'는 우리에게 기꺼이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게 도와주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긍정적으로 전환시켜 준다. 이 수준에 이르러 우리는 비로소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새로운 직업기술을 배울 수 있는 에너지를 갖게 되고, 성장과 교육이 성취의 목표가 된다. 이 수준에 이르면 두려움이나 성격의 결함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두려움이나 결점에도 불구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걱정하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낮은 의식 수준에서 와는 달리 노력 자체를 마비시키지는 않는다. 200 이하의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마는 장애물을 만난다 할지라도 잠재력을 갖기 시작한 이 수준의 사람들은 이를 자극제로서 활용한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자기가 흡수하여 소모하는 에너지만큼 세상에 그 에너지를 되돌려 보낸다. 반면, 낮은 수준의 사람들은 사회로 환원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여 에너지를 흡수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성취함으로써 또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힘을 얻고, 더욱 더 용기 백배하게 된다. 바로 이 수준에서 비로소 생산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인류의 전체적인 의식 수준은 오랫동안 190에 머물렀으나, 20년 전부터 204의 수치로 괄목할 만한 비약을 보여주고 있음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에너지 수준 250 : 중용
이 수준이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인 것은, 낮은 수준의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편파적인 관점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기 때문이다. 250 이하의 수준에서는 사물을 이원적이고 융통성 없는 관점으로 바라보며,이 때문에 흑과 백으로 분명히 가를 수 없는 복잡다단한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편파적인 태도는 극단적인 대립을 초래하고, 대립은 분열과 반대를 낳는다. 동양 무술에서도 유연하지 않은 동작은 큰 약점으로 취급된다. 구부릴 줄 모르는 완고함은 그만큼 부러지기가 쉬운 것이다.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반대와 장애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중용'의 태도는 유연성과 포용력,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파악 능력을 갖게 해준다. '중용'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우리는 결과를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패배하거나 좌절하거나 놀라는 일도 없게 된다. 중용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가 이 직장에 못 들어가면 다른 직장에 들어가면 되지"라고 생각한다. 이 단계는 내면의 자신을 신뢰하는 출발점으로서, 자신의 잠재력을 느끼기 시작하며, 쉽게 위협을 느끼지도 않는다.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안달하는 일도 없다. 인생에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여 자기 인생이 어찌 굴러가든 근본적인 수용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250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아도 좋다. '중용'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고,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자기 신뢰를 잃지 않는다. 함께 지내기가 쉽고, 친하게 지내더라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 그들은 대립이나 경쟁심리, 죄책감 등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화하고 근본적으로 정서가 안정되어 있다. 그들의 태도는 비난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다는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 '중용'에 다다른 사람들은 자유를 아주 중시하므로, 그들을 규제하려는 일은 아주 어렵다.
에너지 수준 310 : 자발성
매우 긍정적인 이 수준의 에너지는 더 높은 수준에 이르기 위한 관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용'의 단계는 직장의 일이 적절하게 굴러가는 수준이지만, '자발성'의 단계는 주어진 과제가 훌륭히 이루어지고 성공의 결실을 맺는 수준이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성장이 빠르고, 마치 향상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보인다. '자발성'이란 인생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저항을 극복하고 기꺼이 참여하는 마음이다. 200 이하의 사람들은 마음이 답답하게 닫혀 있지만, 310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은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진실로 친절하게 대하고, 사회적·경제적 성공이 저절로 따른다. '자발성'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실직을 해도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하고, 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들은 밑바닥 일이나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을 품고 있으며 사회의 선에 이바지한다. 그들은 또한 내면의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배움에 장벽을 두지 않는다. 이 수준에 이르면 자긍심이 높고, 이것은 사회적인 인정, 존중, 또는 보상 등에서 오는 반응에 의해 항상 보강된다. '자발성'이란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기꺼이 응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사회를 움직이고 사회에 기여한다. 곤경으로부터의 회복 능력, 시련을 통한 배움을 통해 이들은 자기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수준으로 향상한다. 그들은 '자존심'을 극복함으로써 자신의 결점을 기꺼이 바라보려고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배우려고 한다. 이들은 아주 훌륭한 학생들이며 또 쉽게 가르칠 수 있어서, 사회의 아주 중요한 자원이 된다.
에너지 수준 350 : 포용
이 수준에 이르면 우리 자신이 인생의 모든 경험을 창조하고 원천이 된다는 이해를 하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책임감이야말로 이 단계의 특징으로, 인생의 여러 외적인 힘에 대응하면서도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200 이하의 사람들은 무력하며, 자신들을 인생이란 폭군의 피해자로 바라보기 쉽다. 이러한 생각은 자신의 행복이나 문제의 근원이 '밖'에 있다고 믿는 데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 수준에 이르면 행복의 근원이 자신 속에 존재한다고 깨달음으로써 커다란 도약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경지에서 그들은 '외부'의 그 어떤 것도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 또 사랑이란 다른 사람들에게서 오거나 그들에 의해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포용'이란 무기력의 한 형태인 무저항과는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포용'이란 슬프고 기쁜 인생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세상사를 특정한 방향으로 억지로 끌러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포용하는 마음은 감정적인 온화함을 가져오고, 부정의 단계를 벗어나 보고 느끼는 능력을 넓혀 준다. 그들은 이제 사물을 오해나 왜곡의 감정 없이 볼 수 있다. 경험의 의의를 깊게 이해함으로써 결국 사물에 대해 '부분적이 아닌 전체적인 이해'를 할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포용'이란 균형, 조화, 지나치지 않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포용'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문제 해결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정열을 쏟는다. 어려운 과제나 일을 만나더라도 괴로워하거나 곤혹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눈앞의 목표보다는 장기적인 목표가 항상 중요하고, 자기 훈련과 일의 숙달이 무엇보다 우위에 있다. '포용'의 수준에 이르면 대립되는 의견이나 갈등에도 극단주의를 택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고 보고, 평등의 가치를 중요시한다. 저급한 수준의 사람들이 융통성 없이 경직된 사고에 사로잡히기 쉬운 반면, 이 수준의 사람들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형태의 대답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럼으로써 차별과 편협을 초월한다. 평등이란 다양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에 눈을 뜸으로써, 거부하기보다는 '포용'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에너지 수준 400 : 이성
이 수준에 이르면 이보다 하위 수준의 감정 단계를 벗어남으로써 지성과 이성이 삶의 전면에 떠오르게 된다. '이성'의 단계에서는 광범위하고 복잡한 자료들을 처리할 능력을 갖고 있어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을 보여준다. 관계의 미묘함, 점진적인 변화와 분명한 차이점이 있는 것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지고, 추상적인 개념과 같은 상징 체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과학, 의학, 그리고 개념화에 대한 이해 수준이 점차 증가되는 것도 이 수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교육과 지식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추구되곤 한다. 이해와 정보가 성취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점이, 400 수준의 가장 뚜렷한 특성이다. 노벨상 수상자, 위대한 지도자, 대법원의 판사들이 이 수준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도 이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수준의 결점은 상징과 그 상징이 뜻하는 바를 뚜렷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또 세상사에 대한 객관적·주관적인 이원론 때문에 사물의 인과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 수준에서는 나무에 가려 숲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쉽고,개념과 이론의 탐닉에 의해 본질의 중요성을 찾지 못하고 지식 자체로 그치고 마는 경우가 흔하다. '이성'의 수준은 본질이나 복잡한 문제의 핵심에 대한 통찰력을 갖지 못함으로써 한계를 갖게 된다. 이성만으로 진리에 도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성은 광범위한 지식과 문헌을 생산해 내지만, 방대한 자료와 결론 사이의 모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모든 철학 이론은 저마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지적인 방법론이 지배하는 현 사회에서 이성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설적으로 더 높은 의식세계로 나아가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수준을 초월한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사회에서는 흔치 않는 일이다.
에너지 수준 500 : 사랑
언론이나 TV에서 묘사하는 사랑은 여기서 말하는 수준의 사랑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이란 육체적 매력, 소유욕, 통제, 탐닉, 에로티시즘, 신선함
등의 격렬한 감정과 결합된 형태를 띤다. 그러한 사랑은 속절없이 무너지기 쉽고, 주어진 조건에 따라 파도치곤 한다. 사랑에 좌절하게 되면 그동안 숨겨졌던 노여움과 의존성이 발가벗겨져서 그 정체를 드러낸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같이 되어 있지만, 이러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지독한 감상주의의 소산에 불과하다. '자존심'에서 비롯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그런 관계 속에서는 사랑이 머무르지 않는다. 500의 에너지 수준은 조건 없고 변함 없고 영원한 사랑에의 눈뜸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사랑이란 외부의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내부에서 그 근원을 찾기에 이 수준에서의 사랑은 오르내림의 파동을 보이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것이 존재 자체가 된다. 사랑은 용서와 보살핌의 세계로 가는 길이다. 사랑은 지적인 것도 아니고, 표면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고양시켜 주고, 그 동기의 순수성으로 인해 크나큰 성취를 이루게 하기도 한다. 이 수준에 이르면 사물의 본질을 분별할 수 있는 역량이 증대하여 문제의 핵심을 꿰뚫을 수 있게 된다. '이성'의 수준을 넘어서게 됨에 따라 문제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전후과정을 섬세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성은 문제를 일일이 따지는 경향이 있지만, 사랑은 전체를 다룬다. 직감 혹은 육감이라고 불리는 이 사랑의 능력은, 사물을 꼬치꼬치 따지지 않아도 즉각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말하면 추상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일어나는 현상 자체는 아주 구체적이다. 사랑의 느낌을 가지면 뇌에서는 엔도르핀(endorphin)이 분비된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사랑은 신분이나 입장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가진다. 사랑에는 어떠한 장애물도 있을 수 없기에 '너와 나의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 사랑이란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자아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켜 준다. 사랑은 삶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여 삶을 힘차게 긍정하게 한다. 사랑은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공격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여 그것을 녹여 버린다. 이 수준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단계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도 열심히 사랑이라는 주제에 매혹 당하고 있고 현존하는 모든 종교가 500 혹은 그 이상의 수치로 측정됨에도 불구하고, 세계 인구의 0.49%만이 이러한 수준의 의식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에너지 수준 540 : 기쁨
'사랑'에 조건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내면의 '기쁨'이 점차 차 오르게 된다. 이 수준에서의 '기쁨'이란 사건의 변화에 의해서 오는 갑작스런 즐거움이 아니라, 모든활동에 동반되는 항구적인 것이다. 기쁨이란 외부의 어딘가에 근원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존재의 매 순간마다 솟구치는 것이다. 540의 수준에서는 치유가 시작되며, 영적인 자조 그룹은 이 수준에 속한다. 540 이상부터는 성인, 영적 치유자, 그리고 그 제자들의 영역이다. 이 에너지 장의 특징은 계속되는 역경 속에서도 인내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이 수준의 특징은 이들이 갖는 자비의 마음 상태이다. 이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들에게는 사랑과 평화를 널리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수준에 이르면 창조의 정교한 아름다움과 완전함에 눈뜨게 된다. 세상 만물은 억지로 이루어진 것이 없으며,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랑과 신성의 표현이다. 이 세상 모든 개개인은 신의 뜻에 따라 생명을 부여받았고, 신성 안으로 녹아들어 갈 것 이다. 이들은 우리들이 기대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에너지 장의 잠재력이 발현된 것이지, 어느 한 개인의 힘은 결코 아니다. 이 수준에서 느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은, 이보다 낮은 수준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어느 특정한 개인보다는 생명 자체의 유익을 위해 쓰려는 강한 욕구를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이런 능력은,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의 능력도 증폭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사망 선고를 듣고도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그 경험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사람들이 적지 않고, 또 그들 중 대부분은 540∼600의 에너지 수준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수준 600 : 평화
이 에너지 장은 초월이나 자아 실현, 신 의식 등의 용어로 묘사되는 경험과 깊이 관련된다. 이 수준은 천만 명중 한 명 꼴로 나타나는 아주 드문 현상이다. 이 상태에 도달한 사람에게는 주관과 객관의 차이가, 또 특별한 관점이라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복의 상태에 잠겨 있으므로 세상일에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고, 따라서 범인의 생활을 하지 않는다. 영적 지도자가 되기도 하고, 확연히 드러나진 않지만 인류의 개선을 위해 일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여 사회에 커다란 공헌을 하기도 하지만 이는 드문 경우에 속한다. 이들은 성인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서, 성인으로 추대되는 일도 드물지만은 않다. 기존 종교의 형식을 초월한 이 수준의 사람들은, 모든 종교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순수한 영성의 소유자들이다. 600이나 그 이상의 수준에서는 아무 것도 멈춰 있지 않는데도, 아니 오히려 발랄하고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는 세상인데도, 세상 전체가 시간과 공간이 멈춰 서 있는 가운데 마치 슬로 모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다른 사람들이 보는 세상과 다를 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세상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무한한 가능성과 의미로 가득 찬 진화의 춤을 계속 추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놀라운 계시는 이성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의 마음은 그 무엇도 개념화시키는 일이 없이 절대의 침묵에 잠겨 있다.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구분이 사라지고, 바라보는 사람이 풍경 속으로 녹아들어가 풍경과 하나가 된다.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지금 여기 계시는' 분에 의해 연결되어 있고, 그 분의 힘은 무한하고, 끝없이 온화하고, 그러면서도 바위처럼 견고하다. 600∼700의 수치로 측정되는 위대한 미술, 음악, 건축 작품들은 잠깐 동안이나마 우리들의 의식을 더 높은 세계로 고양시켜 주며, 시간을 뛰어넘어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되어 준다.
에너지 수준 700∼1,000 : 깨달음
이 수준은 영적 완성자의 단계로서, 수많은 세대를 통하여 군중들이 추종하고 따르며 영성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 사람들은 신성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들 자체가 신성과 동일시 되기도 한다. 강렬한 영감의 소유자로서, 이들은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주는 끌개 에너지 장을 형성한다. 이 수준에서는 개성을 띤 어느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더 이상 분리되는 일이 없다. '진아(Self)'와 '의식'과 '신성'이 하나로 동일시된다. '보이지 않는' 세계조차도 마음을 뛰어넘어 '진아'로서 경험된다. 이렇게 에고를 초월함으로써 인간 완성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모범이 된다. 이 수준이야말로 인간의 몸을 입고 도달할 수 있는 최고봉인 것이다. 심오한 가르침은 사람들의 정신을 앙양하고, 인간성의 자각에 눈뜨도록 부추긴다. 이러한 비전을 갖는 것은 '은총'이라 불리며, 이 은총에 의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의 단계에서는 시간과 개별성을 뛰어넘게 된다. 육신인 '나'에 대한 관념이 없어져서, 운명이라는 것에도 연연해하지 않는다. 육신이란 마음의 창문을 통한 의식의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몸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의사 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자아는 보다 큰 '진아'에로 녹아 들어간다. 이 단계는 이원성을 뛰어넘는, 완전한 '하나(Oneness)'의 수준이다. 의식의 분화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며, 항상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깨달음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들은 소위 '무드라(mudra)'라 불리는 특별한 손 모양을 보여주는데, 손바닥에서는 축복의 에너지가 발산되고 있다. 이것은 이들이 축복의 에너지 장을 인류의 의식 세계로 보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신성한 은총은 1,000에 이르는 것으로 측정되며, 역사에 기록된 인간으로서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서, 우리가 아는 세 성인에게는 주(Lord)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주 크리슈나(Lord Krishna), 주 부처(Lord Buddha), 주 예수 그리스도(Lord Jesus christ)가 그 분들이다
의식수준 200 (용 기) : 넌 정말 못하는 게 없구나, 넌 잘할 수 있어 ,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의식수준 250 (중 용) : 양쪽의 애길 다 들어보고 결정하자. 가치관이 서로 다르잖아
의식수준 310 (자발성) :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의식수준 350 (포 용) : 그래 그럴수도 있지. 그것도 좋은거야 뒷일은 내가 책임질께
의식수준 400 (이 성) : 널 진심으로 이해한다. 해결방법을 한 번 찾아보자꾸나.
의식수준 500 (사 랑) : 우리 같이 해요 . 사랑합니다. 내가 자랑스럽다. 널 사랑한다.
의식수준 540 (기 쁨) : 무심코 웃음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식수준 600 (평 화) :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의식수준 700 (깨달음) : 700이상은 언어이전의 순수의식 상태이므로 말로 표현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의식수준 400(이성)의 영역에 이르면 이 육체가 나라는 생각 즉 이 육체와 이 마음(생각)과 이 감정이 에고에 불과함을 완전히 깨닫고 에고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됩니다. 즉 감정의 기복이 전혀 없는 수준이 됩니다.
의식수준 500(사랑)은 종교에서의 사랑을 의미하는 영역입니다.
의식수준 540(기쁨)은 우리는 하나임을 깨닫게 되는 수준입니다.
의식수준 600(평화)은 선악구별이 없어지는 단계로 깨달음이 드러나기 시작하며 무아지경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600이상 수준에서는 우주와의 교감이 가능하며 정신적 사랑을 의미하는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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